저의 블로그까지 오신 분이라면, 이미 많은 웹사이트와 블로그의 정보를 취합하여 항해사가 무엇이며, 하는 일은 무엇이며, 어떤 교육과정을 통해 취업을 할 수 있는지 등등 대부분의 일반적인 답을 알고 있으리라 생각된다.
그래서 현직 선장으로서 항해사를 꿈꾸는 사람에게 여타 블로그나 웹사이트에 없는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지극히 개인적인 당부사항과 항해사에게 필요한 자질에 대해서 조언을 해주고자 이렇게 글을 쓴다.
1. 항해사가 하는일?
1) 해상에 있는 장해물, 어선, 어망과 선박들을 피해서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선박을 운항하는 일을 한다.
2) 선교에서는 조타수와 항해사 2인 당직 체계이며, 조타수에게 핸들을 맡기고 조타 명령을 한다.
3) 항해사는 안전항해에 필요한 RADAR, ECDIS, GMDSS 등의 항통장비를 능숙하게 다루어야 한다.
4) 기본적으로 4시간 근무, 8시간 휴식으로 3교대 당직 근무를 수행한다.
5) 8시간의 휴식시간 중 각 항해사관에게 주어진 기타 업무(화물관리,기부속점검,해도개정,의약품관리,본선정비,자재관리,주간점검,월간점검,안전비품관리,소화장비관리,각종 내외부심사준비,SQMS에 따른 많은 서류업무)를 수행하고 문서화된 결과(REPORT)를 선장/기관장에게 결재받는다.
6) 선박 항해 당직업무는 아주 기본 업무이며, 그 외에 갑판작업 내용들을 살펴보기를 바란다. 과연 내가 꿈꾸던 항해사가 하는 일이 맞는지 고민해볼 문제인 것이다.
(항해사가 직접 하는 해야 하는 일도 있고, 갑판 부원들에게 시켜야 하는 일도 많지만, 일단 기본적으로 작업의 내용을 알아야 계획도 하고, 작업을 허가도 하고, 위험성을 알려줄 수도 있고, 안전하게 작업을 시킬 수가 있겠다. 그러려면 승선 생활을 하는 동안 많은 경험과 학습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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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항해사에게 필요한 자질 또는 능력
1) 영어
현장에서는 토익 700점 정도의 수준이면 업무를 수행함에 있어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한다. 표준 해사 영어를 사용하며, 업무적인 용어와 어휘는 특정되어 있고, 대부분의 선원이 모국어가 아닌 제2 외국어로 영어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간단하고 명료한 문장을 완성하면 된다. 긴급을 요할 때는 몇 개 단어의 나열 만으로 소통이 가능하기도 하다. 간혹 토익 900점 이상의 초임 항해사들도 선상에서의 업무적인 어휘와 동남아시아 선원들의 억양과 발음에 적응되지 않아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것을 자주 경험했다. 모르는 어휘는 사전을 찾아도 될 정도로 시간적 여유가 있다.
2) 빠른 사고 처리 능력(산술적 사고 및 공간지각 능력)
해상에서 마주오는 선박, 횡단하는 선박, 주변에 많은 어선과 어망이 산재해 있는 곳에서 항해사는 항통장비를 활용하여 빠른 판단과 올바른 결과를 도출하여 장해물을 피해야 한다. 선박은 자동차처럼 핸들을 꺾는다고 해서 바로 앞에 있는 장해물을 피할 수가 없고, 브레이크가 없기 때문에 충분한 시간과 거리를 두고 액션을 취해야만 원하는 지점에서 장해물을 피할수 있다.
예를 들면, A선박은 길이가 200미터이고, 선회권 상세에 핸들(러더)을 최고로 꺾어도 12시 방향에서 3시 방향으로 변경되는데 0.3마일(555미터)의 거리가 필요하다고 나와있다. 이 말은 최소 0.3마일(555미터) 전에 핸들을 최대로 꺾어야만 0.3마일 앞에 있는 어선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것은 0.3마일 보다 가까이 있는 장해물은 핸들을 최대로 꺾어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만큼 선박의 항해사는 철저한 견시로 장해물을 충분한 거리와 여유 있는 시간에 식별하고 안전한 항로를 계산하고 판단하여 액션을 취해야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해상에서 피해야 할 장해물은 속력과 방위를 가지고 움직이는 선박, 어선, 파도에 표류하는 어선, 어로작업을 위해 띄워놓은 무수히 많은 어망들의 이동 방향과 속도 등을 종합적으로 계산하고 판단하여 최적의 피항 방법을 도출해 내고 빠른 명령으로 실행하는 단순하면서 복잡한 작업이기에 산술적 사고와 공간지각 능력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장해물을 뒤늦게 발견하고 우물쭈물하다가는 바로 사고인 것이다.
3) 체력(정신력)
4시간 근무 8시간 휴식이 부여되지만, 휴식시간에 식사도 해야 하고, 본인에게 주어진 서류업무 및 관리 업무도 해야하고, 법적으로 정해진 교육과 훈련도 해야하고, 입항/출항 스케줄에 따라 스탠바이도 해야 하기 때문에 온전한 8시간의 휴식을 취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또한 항해사는 3교대 당직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계약기간을 채우기 전까지 휴무 없이 6개월~10개월간 일해야만 한다. 기관사는 UMA 당직체계이므로 교대로 쉴 수 있다.
휴무 없이 근무를 해야 하고, 주어진 휴식도 충분히 쉬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항해사는 누적된 피로를 빠르게 씻어낼 수 있는 체력을 보유해야 하고, 떨어진 체력을 강한 정신력으로 이겨 낼 수 있어야 한다.
또한 항해 중 망망대해에서 몸이 아프다고 바로 병원에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육지에 도착하여 병원 진료를 받을 때까지 적어도 수일에서 수십일이 소요될 수도 있다. 그래서 항해사(선원)는 함부로 아파서도 안된다. 선박에 물론 의료관리자 교육을 이수한 항해사가 승선 중이지만, 해줄 수 있는 것이 제한되어 있다.
본인의 경험을 떠올려 보면, 파키스탄에서 싱가포르로 항해하는 중 인도양 망망대해에서 선원이 작업 중에 이마를 다쳐 5센티가량 깊게 찢어졌다. 망망대해에 헬리콥터 구조요청도 불가하고 가까운 육지까지도 사흘이나 걸리는 상황이었다. 의료관리자 교육을 이수한 본인과 항해사가 응급의료센터 의사의 조언을 받아 꿰매고 항생제를 처방하였고, 지속적으로 간호하여 4일 후 병원에서 의사의 점검을 받을 수 있었다.
또한 본인이 실습 항해사로 승선중 포항항에 입항하여 화물 하역 작업을 3일간 하였다. 이때 배가 너무 아파서 응급실을 찾았는데, 복막염으로 바로 수술에 들어갔고 7일간 입원 치료를 받았다. 내가 만약 한국에서 호주로 항해하는 망망대해에서 복막염이 터졌다면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생명에 문제가 생기지 않았을까? 지금 생각만 해도 끔찍하며 정말 운이 좋은 케이스였다.
항해사는 아프다고 해서 누군가 근무를 대신해주지도 않고, 선박에는 최소 필수 요원만 승선하기 때문에 업무를 대신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 그렇기에 평소에 자기 관리를 철저하게 해야 하며 아픔도 고통도 잘 이겨낼 수 있는 체력과 정신력이 있어야 한다.
4) 피할 수 없는 뱃멀미
위의 체력(정신력)과 유사한 내용이지만, 바다에 부유하여 움직이는 선박은 어쩔 수 없이 좌우로 앞뒤로 위아래로 움직일 수밖에 없고, 기상이 나쁠 때는 매우 심하게 요동쳐서 가만히 서 있기도 어려운 순간도 있다.
만약 뱃멀미가 극복하기 어려울 만큼 매우 심하다면 항해사의 길을 처음부터 접는 것이 나을 것이다. 주변에 뱃멀미로 고생하고 항해사의 꿈을 접는 항해사를 여럿 보았다. 뱃멀미를 하는 것은 인간 본연의 섭리이며, 본인도 정상적인 사람이기 때문에 배멀미를 한다. 그러나 그 정도가 심하지 않고 정신력으로 극복 가능한 수준은 되기 때문에 계속 승선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배멀미를 심하게 하거나, 쉽게 피로해 지거나, 지병이 있는 학생에게는 권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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