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라면 흙을 밟으며 사는 것이 당연한 이치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1년 가까이 땅을 밟지도 못하고,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와 만나지 못하는 삶을 꿈꾸는 사람은 분명 제정신이 아닐 것이다. 본인도 초임 항해사로 승선하여 군특례가 끝나는 시점에 한 번의 유혹이 있었고, 5년 차에 그 유혹에 이끌려 배를 그만두고 육상직(해운선사 운항팀)으로 눈을 돌렸었다. 그러다 1년 반 가량 육상 직업의 쓴맛?을 경험해 보고 다시 승선하여, 현재 이렇게 계속 해상직에 종사 중이다. 그래서 짧지도 그리 길지도 않은 본인의 인생 경험과 주변의 무수히 많은 선후배와 동기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승선을 기피하는 항해사들에게 인생선배로서의 조언을 몇 가지 해주고 싶다.
1. 해상직원이 승선을 기피하는 이유?
십수년째 해상직에 종사하고 있는 본인도 매 순간 느끼는 바이며, 선원이 해상직을 기피하는 공통적인 이유는 아래와 같다.
- 업무가 체력적으로 힘들어서 내 성향과 맞지 않는 것 같다.
- 소음,진동이 너무 커서 잠을 제대로 잘 수 없다.
- 육상에는 지금 보다 훨씬 수월하고 편한 직업이 많이 있을 것 같다.
- 상급 사관으로부터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 각종 대내외 심사 & SURVEY 준비로 육체적/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너무 크다.
- 가족이 그립고, 사랑하는 애인이 보고 싶다.
- 재때에 영상통화 또는 연락이 쉽지 않다.
- 매일 퇴근하고 자유롭게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다.
- 주말이나 공휴일, 연차를 내 맘대로 즐기고 싶다.
- 퇴근 후 내가 원할 때 마음껏 취해보고 싶다.
- 주말마다 가족, 지인 등의 모임에 참석하고 싶다.
- 경조사(특히 가족)에 참석하지 못하는 게 너무 싫다.
- 뱃멀미가 너무 심해서 견딜 수가 없다.
- 조리장의 음식이 나와 맞지 않고, 먹고 싶은 음식들을 먹을 수 없다.
- 기본 근무 8시간 이외의 오버타임 시간이 많고, 주말/공휴일/야간의 시급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고 느낀다.
- 선원 교대와 운항 스케줄 문제로 본인이 원하는 시점에 하선이 어렵다.
- 장기(6개월 이상) 승선이 싫다.
- 최근 MVSAT을 통한 위성인터넷 서비스가 확대되는 추세이지만, 인터넷 검색이나 영상통화도 불가능할 만큼 속도나 품질이 낮은 편이다.
위의 사유들보다 무수히 많은 개인적인 사유도 존재하겠지만, 보편적으로 공통적인 사항은 이러하다.
2. 해상직원이 경험한 육상직의 장점.
직/간접적인 경험을 토대로 육상직의 장점을 열거해 보았다.
- 먹고 싶은 음식/주류를 마음대로 먹고 마실수 있다.
- 퇴근 후, 주말 업무에서 해방되어 방해받지 않고 온전히 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 가족/애인/지인들과 자주 모임을 할 수 있다.
- 자녀들과 매일 얼굴을 마주할 수 있다.
- 부모님/가족/애인이 위급할 때/필요로 할 때 만사를 제쳐두고 자리를 지킬 수 있다.
- 친목/모임/소개 등을 통해 여러 사람들과의 대인관계를 맺고 인맥을 넓힐 수 있다.
- 매일 소소한 일상적인 행복을 누릴 수 있다.
- 빠른 인터넷으로 원하는 영화/드라마/유튜브 등을 시청할 수 있다.
- 투잡 또는 추가적인 부업/창업도 준비할 수 있다.
- 여러 가지 취미 활동을 하는데 제약이 없다.
3. 해상직원이 경험한 육상직의 단점.
해상직원들이 승선직을 그만두고 육상직을 하면 꿀만 빨 것 같지만, 현실은 그러하지 못하다. 그래서 직/간접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육상직의 단점을 열거해 보았으니, 이직을 고민 중인 분들은 참고하기 바란다.
- 승선 경력을 바탕으로 해운회사 취업은 쉬운 편이지만, 해상직 이외의 직장에 취업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준비를 하여야 하고 시간/금전 적인 투자를 해야 한다.
- 해운회사에 근무한다면, 선박이 운항하는 동안 발생되는 사건/사고에 대응해야 하기에, 사건이 터지면 주말도 명절도 밤낮도 없이 출근해서 일해야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 공무원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하여야 하고, 수십, 수백만 수험생과의 경쟁을 하여야 한다.
- 몇 년간 공무원 시험에서 낙방하였을 경우에는 시간적/금전적 손해가 매우 크고 자존감도 낮아진다.
- 직장과의 거리에 따라 다르겠지만, 출퇴근 시간에 많은 시간(1~2시간)을 낭비한다.
- 급여가 승선할 때보다 50% ~ 수백만 원 깎이는 걸 감수해야 한다.
- 본가 주변이 아니라면 집을 구해야 하고 월세/이자/관리비/공과금 등의 고정 지출이 크게 생긴다.
- 의류, 미용, 식사를 위한 지출이 생각보다 크다.
- 애인/친구와의 잦은 만남으로 지출이 커져서 조금만 소홀하면 깡통 계좌가 되기 쉽고, 저축은 불가능하다.
- 육상직은 직장 내 구조가 복잡하고 상위 직급이 많아서, 본인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상사들이 몇 배는 많다.
- 퇴근 후의 자유로운 여가시간을 예상했지만, 잔업이나 야근도 많다.
- 빠질 수도 없고, 어울리기 싫은 직장 상사와의 회식 자리도 많다.
- 전날 회식 등의 과음으로 늦잠을 자서 지각하는 경우도 대비해야 한다.
- 업무 실수가 있을 때, 전체 직원이 보는 앞에서 욕받이가 되기도 한다.
- 진급을 위해 업무 외적으로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많고, 입사 동기가 먼저 진급을 할 경우에 상실감이 크다.
- 직장상사로 낙하산(사장 친인척)을 보좌해야 할 수도 있고, 나이 한참 어린 임원에게 존대를 해야 할 수도 있다.
- 연차도 눈치를 보며 써야 하고, 직장 내 직원의 경조사에 무조건적인 참석을 강요하기도 하기 때문에, 주말도 맘 편히 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4. 육상직으로 결심을 굳힌 후배들에게 조언.
위와 같은 육상직의 단점에도 불구하고 이직을 굳게 결심을 한 후배들에게,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인생을 바탕으로 내가 육상직으로 이직을 한다는 가정하에 아래와 같이 조언을 하오니 참고하면 좋겠다.
- 해운선사(해무,안전,운항,공무)에 취업하는 것은 장기 보다는 단기로 경험해 볼것을 추천함.
- 지방 하위 공무원이라도 공무원에 도전해 볼 것.
- 잘 찾아보면, 몰라서 지원하지 않는, 경쟁률이 매우 낮은 꿀보직의 각 지자체 어업지도선등에 승선 경력자를 뽑는 곳이 많음. (VTS, 어업지도선, 해양연구선, 소방선, 관공선, 해양경찰, 해난심판원, 항만청, 등등등)
- 공무원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공무원 여성을 만나기 매우 쉽기 때문임.
- 공무원 여성과 결혼하여 맞벌이 가정을 이루는 것을 추천함.
- 공무원은 육아 휴직 후 복직에 큰 제약이 없기 때문임.
- 공무원은 해상직 기간 동안의 국민연금 납입 년수를 호봉으로 인정해줘서 상대적으로 박봉은 면함.
- 승선중 모아둔 자금과, 공무원 저금리 대출을 활용하여 쉽게 내 집 마련할 기회가 있음.
- 맞벌이 공무원은 공무원 연금이 있으니, 노후 걱정 없이 소득을 전부 소비해도 무방할 정도로 시간적/경제적/정신적 여유가 생김.
- 노후에 큰돈이 필요할 것 같거나, 공무원 월급으로 가정을 꾸리기 어렵다 판단되면, 그때 다시 안정적인 공무원 와이프를 두고 승선하면 됨.
- 재승선을 위해 보험이라 생각하고 1급 면허 또는 1항사/1기사 경력은 채워두고 하선할 것!
- 육상에서 큰 재미보다는 시련을 맛보았다면, 다시 승선하여 선장이나 기관장을 목표로 정진해 보시길 바란다.
- 한우물을 10년 파면 결국, 10년 후에 주변을 둘러보면 그래도 주변 동기들 보다 앞서거나, 뭔가 이루어져 있음을 체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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